사랑이가 초3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버블 붕괴 이후 남편의 사업이 점점 내리막 길로 들어 서기 시작...

도저히 회복의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점점 직원수가 줄어 들었고 갖고 있던 부동산을 한개씩 두개씩 팔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한 사업은 걷잡을수가 없었습니다.


수입은 제로.

결국 갖고 있던 부동산은 다 팔아 제꼈고 남은건 집 한채.

회사도 접었습니다.

비싼 사무실 집세와 직원들 월급을 감당하지 못한거지요.





도저히 앞이 안보이는 상황.

매일이 돈과의 전쟁.

빚은 쌓여가고....

당장 코 앞의 일들도 해결을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러서야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더 이상은 남편만 바라보고 있을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거지요.


최소한 생활비라도 벌자......


한달간을 고민했습니다.

외국인, 이젠 아줌마 소리 듣는 나이, 애까지 있어서 시간에 제한을 받는 현실.

아무리 뒤져봐도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나를 받아 줄 곳도 없을 뿐더러 

더욱 힘들었던건 

내가 쌓아 올린 잘난 자존심이라는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이 었습니다.

내가 이나이에, 더군다나 일본에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는건지....

너무 비참헸고 무엇보다 남편이 너무 미워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자는 얼굴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나왔습니다.

남들처럼 피아노도 가르치고 수영도 보내고 싶고 ....

해 주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비어있는 지갑.

더 이상 지체 할수 없다......


다음날....집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습니다.

10년간 다니던 편의점이라 점장과 안면이 있습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

이곳이라면 날 써줄것 같다 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지요.

자신감까지 상실한 나에게는 더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주변의 시선.

옆집 아줌마가 여기서 날 보면 놀라겠지?

미꾸 엄마는?

사업 망했다고 소문 나는거 아님?

내 잘난 멋에 취해서 살아 왔던 내게 가장 큰 시련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때까지 사랑맘은 내가 꽤 잘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감 충만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거든요.

집에서 뚝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해도 됐었는데..

직업을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고 

무엇보다도 사랑이의 시야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이곳이 제일 만만했습니다.



"저기......나 여기서 일좀 하고 싶은데...."

"정말요??"

"네..."

"에이...농담이죠?"

"아뇨,진짜로..."

" 당장 오세요"

너무 흔쾌히 받아주는 덴쬬(점장). 

고마웠습니다.



덴쬬와 여러가지 얘기를 나눴습니다.

한달 수입을 어느정도 예상 하느냐....고 덴쬬가 물어 봅니다.

"20만엔은 벌어야 겠는데요?"

편의점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는 사랑맘은 아무 생각없이 얘기를 했습니다.

매일 8시간 일하면 그 정도는 쉽게 벌거라 생각한 사랑맘.

덴쬬가 웃으며 자세히 설명을 해줍니다.

30분을 듣고 나서야 이해를 한 사랑맘.

내가 20만엔을 이곳에서 벌려면 기존의 종업원들의 일하는 시간을 뺏어야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사람좋은 덴쬬는 내가 원하는 시간과 요일에 최대한의 시프트를 넣어 주었습니다.


첫날 일을 하고 온 사랑맘.

이 일이 살짝 맘에 듭니다.

며칠 하다보니 이 일이 너무 재미있어 졌습니다.

원래 집에서도 정리 정돈 잘하는 사랑맘은 편의점에서

하는 일들이 너무 맘에 듭니다.

새 상품이 들어 오면 잘 정리해서 집어 넣고 

여기 저기 가게 안을 돌아 다니며 구석 구석 예쁘게 물건을 진열합니다.

빈 담배 곽에 담배를 채워 넣은 일도....튀김을 만들어서 가지런히 놓는 일도..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첫날 마주친 옆집 아줌마,나보다 그 아줌마가 더 놀라더군요.

그런 상황을 두려워 했었는데...... 난 오히려 너무 담담 했습니다.


아니,대체 뭐 때문에 힘들어 했던거야???

겪어 보니 별거 아닌데.....

한달 동안 잠을 못잤다는게 너무 웃겼습니다.


편의점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쯤 되던 어느날...

오후 5시에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서 사랑이 뒤치닥거리 하고

재워 놓은 다음 가게로 다시 갔습니다.(걸어서 1분)

"덴쬬, 나 일좀 더 해도 돼요?"

토끼 눈을 하며 덴쬬가 한마디 합니다.

"안돼는데요...월급을 더 이상 줄수가 없어요"

"아니요,돈 필요 없어요. 그냥 해 드릴께요. 난 이 일이 너무 재밌어요"

덴쬬는 아마 이여자 어디가 좀 모자란건 아닌가....생각 했을지도 몰라요.

아뭏든 그렇게 사랑맘은 그곳에서 즐겁게 일을 했습니다.




덴쬬는 이 가게의 사장 동생입니다.

어렸을때 부모가 이혼을 해 헤어진 형제.

사업에 성공한 형이 동생을 찾아 이 편의점을 맡긴 겁니다.

근데 이 덴쬬가 사람은 좋은데.....

디즈니랜드에 미쳐서 일년치 패스포드를 끊어 매일 아침 디즈니랜드를 갑니다.

처음 얘길 들었을땐......혹시 변태 아닌가....하고 생각도 했습니다.

멀쩡한 성인 남자가 매일 디즈니라니!!!!!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디즈니 메니아들이 있었더군요.

변태는 아니었습니다.ㅋ

일년 365일 매일 쉬지 않고 디즈니를 가는 사람들.

덴쬬도 이 미키에 미쳐서......ㅋㅋㅋ

30명 정도가 매일 모인다고 합니다.


일본의 디즈니 메니아 중 요시다라는 사람에 대한 기사.

유명 블로거라는데 난 처음 봅니다.

지금까지 6천번을 갔다 왔다네요.헐~~~




이 덴쬬....

당연히 낮에는 가게에 없습니다.

손님이 없는 심야 시간에 가게에서 잠을 자고 디즈니랜드로 매일 출퇴근을 하는 거지요.

통상은 덴쬬가 낮에 가게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게 원칙인데

덴쬬가 없으니 덴쬬의 일을 도맡아서 하는 사람이

어제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왕싸가지 여자 입니다.

이름은 가야마.

약점이 많은 덴쬬는 이 여자에게 벌벌기고.....다른 직원들도 이 여자의 눈치를 봐가면 일을 하는 상황.

그런데 난 그런 꼴 못 보는 여자.


어린 학생들은 괜찮았는데 나이 좀 있다고 하는 여자들이 덴쬬를 괴롭히기 시작 했습니다.

갑자기 가게에 안나오는 사람들이 있을땐 

그 시간을 메꿔져야 할 사람이 필요한데 아무도 그 일을 안 해주기 시작하는 겁니다.

디즈니랜드에 있는 덴쬬.

빈 가게.....

이들은 서로 연락을 해서 덴쬬가 전화를 해도 일을 안 해주기로 담합.

조금 친해지니 나에게도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한 마디로 덴쬬 물 먹이기.

이런 일에 동참할리가 없는 사랑맘입니다.

사랑맘은 그 빈자리를 다 채워 줬습니다.

나에겐 고마운 사람이었고, 그는 누구보다도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거든요.


수백가지의 담배.

이걸 다 외워서 손님에게 척 내줘야 한다능.......ㅋ



사랑이의 학교 끝나는 시간은 3시반.

난 5시에 퇴근입니다.

사랑이 아빠가 집을 지키고 있을땐 괜찮은데

아무도 없을땐 혼자 집에 보내기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빈집에 혼자 있는 아이.....(불안하다..)

한시간 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든 메꿔야 했습니다.


사랑이는 하교를 하면 가게에 들러 책가방을 내려놓고 

부리나케 공원으로 친구와 놀러를 갑니다.

가끔 친구와 약속이 없을땐 가게의 사무실에서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곤 했구요.

덴쬬가 양해를 해 준 덕입니다.

자신이 어렸을때 고생 했던 얘기를 해 주며

사랑이의 간식까지 챙겨 주는 덴쬬가 참 고마웠습니다.

가끔은.... 

케잌을 남들 몰래 반가격으로 주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가게 물건을 구입할땐 정말 싸게 주기도 했어요.

나만 그런 편의를 받았느냐....아닙니다.

다른 몇 사람도 그런 편의를 받은 사람이 있었지요.

이곳에서 10년을 일한 애엄마는 자기 딸도 어렸을때 사무실 안에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기도 했었다고....하더군요.

그랬던 그녀가 덴쬬 이지메의 주멤버가 되어 있었습니다.

날을 잡아 그 여자를 불러 얘기를 했습니다.

"너,그러면 안되는 거야. 

옛날에 너도 애 땜에 힘들때 덴쬬가 잘 해줬다고 했잖아.

그런 덴쬬한테 이럴수 있니? .."

순순히 인정하는 그녀.

그렇게 그곳에서 덴쬬의 위치를 정상적으로 돌려 놓으려 노력했음에도 

결국 덴쬬는 그 자리에서 쫒겨 나고 말았습니다.

손을 쓰기엔 너무 늦었던 거지요.




새 덴쬬가 들어 온 첫날.

가게의 상황을 다 알고 있더군요.

예전의 덴쬬가 했던 일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살짝 열받은 사랑맘은 성질을 못 이기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전의 덴쬬가 디즈니에 미쳐서 가게일을 소홀하게 했던건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쫒겨 날정도로 심하게 나쁜 사람 아니었어요.

인간적으로는 정말 좋았던 사람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게 일을 게을리 한것도 없어요.

그리고 저 사람들 지금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엄청 편하게 일했거든요?

상관을 쫒아낸 직원..대단하지요?

당신도 당하지 말라는 법 없습니다.

종업원들 말에 휘둘리지 말고 소신껏 일하세요...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남에게 욕 먹을 만큼 전 덴쬬, 나쁜 사람 아니었습니다"


묵묵히 내 말을 듣고 있던 덴쬬.

잘 알았다고 대답을 합니다.


결국 덴쬬를 이지메해서 쫒아냈던 여자들은 새 덴쬬 밑에서 고생 좀 했습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사람이었거든요.

새로 온 덴쬬도 손 위에 올려 놓고 장난 치려던 종업원들은 

더 엄해진 가게 룰 때문에 곤욕을 치뤘습니다.

호랑이 없던 곳에서 주인 행세 하던사람들의 말로.


이런걸 사자성어로 

자 업 자 득 이라고 하지요.


살다보면 이런일 저런일 참 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많이 어려웠을땐 사업을 하는 남편보다 월급쟁이 남편이 부러웠습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제가 느낀건

부와 가난은 상대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진것이 남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가난한 것이고

남보다 좀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 부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거죠.

그 경계는 자신의 가치관이 만들어 낸다는것과

공통점은 둘다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인가 대상을 정하고 그것과 자신이 소유한 것을 비교해

 행불행이 결정지어 진다면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혹시.....

저 같이 힘든 길을 걸어 가고 계신 분이 있다면

"괜찮습니다. 곧 지나갑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사는거 별거 아녜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