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를 낳기전의 일이다.

지인으로부터 어떤  한일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인과 결혼해 아들 한명을 두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다.

아들이 고딩이라고 하니 적어도 일본에 산지 20년은 됐을듯하다.

근데 이 고딩 아들이 엄마가 한국인 임을 무쟈게 부끄러워 한다는 이야기다.

어쩌다 티브이에서 한국에 대한 방송이 나오면 아버지와 둘이 앉아 

한국인 비하,경멸,조롱하는 얘기를 엄마 앞에서 스스럼 없이 하니

엄마는 주눅이 들어 그들 앞에서는 "한국"의  "한"자도 입에 내놓지 못하고 산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 스스로도 이젠 일본인 행세를 한다는 얘기다.

불행한 가족이다.


이런 얘기는 내귀에 가끔 심심히 않게 들려온다.

실제로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자신이 한국인이라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저번달에 아들만 일본국적으로 귀화를 시켰다.


사랑맘은 그들이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인척 살아가며

이국땅에서 한국인임을 자신있게 밝히지 못하고 사는 것을 탓하고 싶진 않다.

나름대로의 사정이 다 있었으리라.






"어머머,,,말도 안돼!!"

"아니,자식을 어떻게 키운거야!!!"

"세상에....엄마가 너무 불쌍하다..."

"어떻게 한집에서 그러고 살수 있어?"

"미친거 아냐???"


얘기를 듣는 한국여자들의 입에서 한마디씩 한숨과 분노가 섞인 말들이 튀어 나왔다.


사랑맘은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머리에 저장해 놓고 있었나보다.

몇년후 사랑이가 태어나고 말을 하게 됐을때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생각이 났다.


"난 절대로 그렇게는 키우지 않을거야"


난 내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엄마를 부끄러워 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건 서로에게 불행이다.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그래도 서로 이해해주고 아껴주는 가족은 되야지...

난 딸에게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길 해줬다.

일년에 한두번씩 한국에 데리고 나가 한국말을 가르쳤고 한국의 문화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경복궁,경주,제주도,부산,대구....한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TV에서 위안부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긴 시간 사랑이와 마주 앉아 한국의 아픈 역사에 대해 얘길 했고

한일전이 있는 날엔 일본과의 대결에 왜 유독 한국인이 뜨거워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학교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배우고 온 딸에게

독도가 왜 한국 땅인지 역사적 증명을 대가며 반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랑이가 유치원을 다닐때의 일이다.

누굴 닮아 그런지 사랑이는 집안의 사사건건을 유치원 쌤한테 다 얘기 하는 통에

사랑아빠와 나는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얘기들은 사랑이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자기컵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의 이름, 강아지가 아빠 밥을 훔쳐 먹었다는 얘기며...

아빠가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서 엄마가 화났다는 얘기...엄마가 한국사람이라는 얘기까지...

사랑이의 수다는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도 당분간 계속됐고 

학교 쌤,주변의 친구 엄마들까지 내가 한국인이라는것을 다 알게 되었다.


사랑맘: 내가 미쵸!!

사랑이가 유치원에 가서 별별 얘기를 다 하는 모양이야.

애 앞에서 말을 좀 조심해야 겠어.

사랑아빠: 무슨 얘길 하는데?

사랑맘: 아침에 뭘 먹었는지서부터 

당신 술먹고 들어와서 엄마가 화났다는 얘기까지 다아~~~~

사랑아빠:...........

사랑맘:이러다 우리집 숫가락 갯수까지 선생들이 다 알겠어.

조심 하자구.


사랑아빠와 나는 입단속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안돼" 라는 말을 가급적이면 안하기로 마음먹은 사랑맘의 

교육 방침은 사랑이의 입을 막지 않았다.

어른인 우리가 조심하면 될일이다.



어찌됐건 

사랑인 어딜 가서든 우리 엄만 한국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는 아이로 자라주었고

난 그런 사랑이가 대견하고 고맙기까지 하다.

사랑이의 수다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서서히 없어졌던것 같다.

지금은???

말을 너무 안해서 엄마인 내가 유도심문을 해야하는 지경이다.




사랑이 중3 겨울.

학교장의 추전을 받아 지망한 고등학교의  면담시험.

장래의 꿈을 묻는 선생의 질문에

국제 헌법 재판소의 재판장이 되고 싶다고 얘기 했단다.

이유에 대해선


"엄마가 한국인이다, 일본과 한국의 여러가지 정치적,역사적 문제와 

국제 분쟁에 대해 알고 있다

  지혜롭게 그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아보고 싶다...쏼라 쏼라......"


면담이 끝나고 집에 온 사랑이에게 면담 내용을 그대로 복창 시키며 들은 얘기였다.

사랑이는 실수없이 크고 정확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다 얘기 했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하지만....

난 그 얘길 들으며 사랑이의 불합격을 예감했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부끄럽지만 그때 들은 생각은..


"바보,엄마가 한국인이라는 얘긴 하지말지...." 였다.


지금이야 케이팝등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때의 일본인들은 한국은 엄청 못사는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고 

어딜 가던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스스로 몸으로 감지하며 살았었던 탓이다.


실제로 그런 차별은 지금도 가끔 느끼곤 한다.


추천 입시는 학교성적,토론,면담으로 점수를 매긴다.

성적도 부족함이 없었고 토론은 담임이 인정한 사랑이의 주특기. 

학교장이 직접한  면접 연습에서도 최고 점수를 받았었다.

유일하게 지적 당한것이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떨어졌다.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저 내 상상 일뿐이다. 

단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스쳐갔고 난 사랑이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착찹한 속내를 숨기고

"네가 운이 없었나보다....."라며 사랑이를 위로했다.



작년 어느날, 사랑이와 저녁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사랑이:"엄마,난 복 받은 애같아"

: "왜?"

사랑이: "엄마가 한국사람이라 이렇게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을수 있어서...."

: "켁!!!!한국엄마라 좋은게 기껏 먹을것 때문이야????"

사랑이: "다른 애들은 이렇게 맛있는거 못먹잖아???


맛난 음식과 핸펀만 쥐어 주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것 같은 아이.ㅋ


: 그지~~~ 그니까 대학 졸업해서 취직하면 엄마 용돈 줘야돼"

사랑이:.....얼마 주면 되는데?

: 월급의 반!!!!

사랑이: 그건 좀 많은거 같은데.....30% 줄께.

: 정말이지? 30% 줄거지?

이따가 각서 써!!!

그리고 집도 사줘.

사랑이: 돈이 있으면 당연히 사주지.


고딩과의 대화라고 하기엔 너무 바보스럽다.

아무리 좋게 봐줄려고 해도 이건 쫌..아직 순진하다고 해두자..ㅋㅋㅋ

(사랑맘네는 이러고 삽니다)



딱 4년전, 25년 동안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

이곳에서 한정거장이면 가는 곳에 사랑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 있다.

사랑맘은 마음이 아파 처음 2년간은 그 근처에 가지 않았다.

볼일이 있어 그 앞을 지나가야 할땐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서 가곤 했었다.

마당 한켠에 심어 놓은 토마토가 영글어 갈 때엔

아침마다 

조그만 바구니를 들고 토마토를 따는 사랑이의 예쁜 추억이 있는집.

벌레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랑맘은

사랑이가 마당에서 무당벌레를 잡아 엄마 손에 쥐어 줄땐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사랑이: " 난 엄마가 한국 사람이라서 너무 좋아.

  양쪽 나라의 문화를 다 알수 있으니까...다른 애들은 한쪽 밖에 모르잖아.

  난 복 받은거 같아."


:"그지??? 넌 땡잡은거야. 거기다 니친구 엄마들 중에서 나같이 딸한테 잘하는 엄마 봤어?

  방청소 다 해주지,놀러 간다면 다 보내주지.나같은 엄마가 어딨어~~"


엄마가 짱 먹었어!!!!






사랑이는 이중 국적자다.

                                                                             2년후엔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 운명.

넌지시 사랑이에게 물어봤다.

:" 사랑아 국적 어떻게 할까? 난 원전땜에 일본이 망할거 같어"

사랑이: "어쩌지 그럼....."

:" 한국으로 할까?"

사랑이: " 난 어느쪽이든 상관없어."

:" 아빠가 알면 난리 날텐데...."

사랑이:" 그럼 일본으로 하덩가"


내딸이지만 너무 쿨하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다.





돼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