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3.11
사랑이를 데리고 서둘러 학교를 나왔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구리하라상과 사랑이의 학교 앞에서 마주쳤습니다.
" 어? 구리하라상!!"
"이또상, 괜찮아? 걱정이 돼서 이또상 집으로 가던 중이야"
이곳 사람들은 저를 이또라고 부릅니다.
왜냐고요?
일본은 결혼을 하면 자기의 성<性>이 남편의 성으로 바뀌거든요..
예를들어 한혜진이라는 여자가 기성룡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면 기혜진으로 이름이 바뀌는 거지요.
구리하라상과는 예전에 알바를 할때 같은 직장에 있었던 인연으로
지금까지 좋은 교제를 나누고 있는 이웃입니다.
아무튼, 고마웠습니다.
피붙이 하나 없는 이곳에 날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정말 고마웠습니다.
자기집은 별다른 피해가 없다며 이또상 집은 괜찮냐고 물어 보더군요.
길거리에 선 채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일단은 집이 무너지진 않았으니 별일 없을거라며 집으로 왔습니다.
이층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팩스기며 자잘한 물건들이 떨어져 있었으나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중간 중간 남편에게 전화 연락을 했으나 불통.
유학 와 있는 조카와도 불통.
미국에서도 언니가 와 있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이곳에서 장사를 해 보겠다며 회사를 설립하고 바쁘게 뛰어 다니고 있었지요.
그 언니와도 전화 불통.
일본어가 서툰 언니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서둘러 TV를 틀었습니다.
다행이 TV는 연결이 되어 있었고 지진 속보를 계속 토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쓰나미.......................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일들이 일본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배가 육지로 올라와 건물 위에 앉아 있는 모습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남편이 돌아 왔습니다.
3시간을 걸어서 집에 온 남편.
일단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니 전화와 인터넷이 연결이 되었고
알바를 하던 조카는 6시간을 걸어서 집에 돌아 왔지요.
신주쿠에 있던 언니는 모든 교통이 마비 되는 바람에 하루를 그곳에서 잤고
다음날 이곳으로 왔습니다.
계속되는 여진과 언니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새웠던것 같습니다.
도저히 잘수가 없었지요.
다음날이 되서야 언니가 돌아 왔습니다.
이제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12일.
슈퍼는 이미 모든것이 동이난 상태.
물 한병 살수가 없었습니다.
수도,전기가 끊겼습니다.
아가들이 있는 집에만 시<市>에서 물을 나눠 주었지요.
이곳은 전쟁터 였습니다.
인터넷을 뒤지던 조카가 방사능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그건 또 뭐시여???
얘기를 들어보니 심각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일본의 모든 방송은 쓰나미로 덮혀 있었고 방사능에 대한 정보는 얻을수가 없었습니다.
미국 방송을 보자는 언니의 제안으로 미국의 방송을 듣고 나서야
후쿠시마 원전에 사고가 난것을 알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원전 사고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지만
이미 이곳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우리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서둘러 여행사에 연락을 했습니다.
왕복 티켓을 갖고 있던 조카는 13일의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다음날 언니와 사랑이의 티켓을 끊었습니다.
이미 모든 티켓이 매진 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두명의 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운명이라는게 있기는 있나 봅니다.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남편.
아이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이곳을 떠나자고 설득을 했으나 요지부동.
결국 전 이곳에 남았습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편.
이혼을 하느니 마느니.....참 많이 미워 했었는데......
이 상황에 남편을 혼자 두고 갈수는 없었습니다.<아, 이 못말리는 의리!!!!! ㅋㅋㅋ>
동생을 남겨두고 가는 언니는 울고 있었고
우리는 두번 다시 못 만날것 처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몇년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3월 14,15일은
도쿄에 방사능이 제일 심하게 날렸던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