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인생의 반을 보냈다.

사실.....일본 사람에 대한 나의 인식은 형편없다.

이웃 사촌이라는 말은 한국에서나 통하는 말.

겉과 속이 다른 이곳 사람들에겐 기대를 접은지 오래다.

한국사람은?

가까우면 가까운 만큼 가끔 투닥거리긴 해도 이상한 정이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저런 감동을 주는 마음을 갖은 사람을 이곳에서 내가 만난적이 있나......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없는것 같다.

몇년을 가족처럼 어울려도 항상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내가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다.

그러다 생각난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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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 가셨고 치바에 200평의 땅과 집이 남겨졌다.

남편의 사업은 사향길로 접어 들고 있어...사실 돈에 목이 말라 있었다.

치매 증상이 있어 병원과 집을 오가며 살았던 시어머니는 근처에 사는 친척이 돌봐줬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는 나에게 남편은 손사래를 쳤다.


"넌 감당못해. 성격도 까다롭고 무엇보다 우리 엄마 입이....

아마 니가 무슨 실수 하면 동네 방네 다 떠들고 다닐거야."


가끔 만나는 관계와, 같이 사는 관계는 전혀 틀리다는 얘기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본인 시엄니 모시고 산다는게 쉽지는 않을것 같았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는 병원에서 돌아 가셨고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던 남편은

갑자기 재산 포기 각서라는걸 써야 하겠다고 했다.

치바의 땅을 어머니를 돌봐준 친척들에게 나눠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라고 했다.(오~~나도 꽤 괜찮은 여잔가벼~~~ㅋ)


남편:"집 정리 하면 돈 나올지도 몰라......"


치매 증상이 있는 시엄니는 돈을 꽁꽁 숨겨 놓고 못찾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  " 그건 집 정리 해준 사람이 갖으면 되지,뭐..."


덕택에 그때의 친척들이 아직도 우리 가족묘 관리를 해 주신다. 


사랑이 아빠.

이런 저런 이유로 이혼은 했지만 뒤돌아보면 좋은 점도 많은 사람이었다.

아프리카의 빈곤한 아이들 영상을 보며 불쌍하다며 눈물짓는 사람...

그렇게 그는 가끔 티브이를 보며 훌쩍거렸었다.

덩치 큰 성인 남자가 티브이 앞에서 훌쩍거리는 모습......정말 안어울렸지만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있었었다.

그런데..

그땐 그런게 눈에 안보이더라.ㅋ



낼 모래가 4월인데 여긴 눈이 엄청왔다.

(날씨,미쳤음.)

눈,비 엄청 좋아하는 사랑맘.

감히 밖에 나갈 엄두는 나지 않아 집에서 몇번씩 창문을 열고 눈을 쳐다봤다.


날씨는 춥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글 덕에 오늘도 해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