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많이 늘어났지만 구원 받은 후 성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회 또한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분별이 어려운 것은 성화는 내가 힘써서 하는게 아니고
거듭난 후 내 안의 성령께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므로
나는 할 것이 없다고 말은 하는데 실상은 내가 하는지 성령이 하시는지 본인들도 모른다는 겁니다
어떻게 분별해서 교회를 찾아야 할까요?
답변 :
나의 행위의 깨끗함 의로움을 하나님께서 그것을 카운트해서 구원하신다면 세상 누구도 구원 받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구원의 근거는 행위의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 다시 말하면 은혜로 주어진 의요 거룩입니다. 성도의 존재 자체가 의인인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행위가 있기도 전 창세전에 이미 아들의 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들이 된 자들이 성도입니다(엡1:3-7) 그 하나님의 약속이 성도 한사람 한사람에게 실행되어서 그들로부터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고 창조의 목적이지 인간 구원이 그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에덴에 선악과가 없어야지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으신 것은 한 분 주 예수를 위한 창조이며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한 창조라는 것을 모르고 세상 교회가 구원이라는 자기 목적을 가지고 (심지어 고지론에 차등상급까지) 사람의 이름으로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위한 교회를 경영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인들은 주일학교부터 집사 장로 평생을 교회 다니면서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무엇인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게 오늘날 사단의 신학에 오염된 기독교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찾으신다고 했는데 교회는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교회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기에 때가 되면 주께서 모이게도 하시고 흩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몸된 교회는 세상 어디에 있든지 주께서 한사람 한사람을 지키시며 돌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자라기까지 빈틈없이 가르치시고 때론 시험하시며 연단하십니다. 마치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처럼 그렇게 돌보시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으로부터 불려나온 교회 에클레시아 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선하고 의로운 것으로 여겨주십니다. 그들은 다 결코 정죄함이 없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이기에 그렇습니다. 내가 하는 하나님의 일은 없습니다. 설사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 더 많은 고난을 겪는다 해도 그것은 내가 아니요 주께서 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는 세상과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거듭난 후에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룩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바울 같은 사도도 내가 원치 않는 그것을 하면 내가 아니요 내 안에 있는 죄라고 하잖아요.
성화란 점점 거룩해짐을 말하는데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예수님의 영단번의 제사에 참여 됨으로 단번에 거룩해짐을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이미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기에 '자기 거룩'을 위해 힘쓰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 그 언약의 피가 어떻게 나의 거룩이 되었는가를 평생토록 죄인으로 체휼하고 고백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1:30)
피로사신 교회는 나의 거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주어지는 그 거룩에 대해 나누고 증거하는 교회입니다. 우리의 거룩에 내가 기여하거나 협조할 일이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헛것이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성령부터 먼저 보내서 우리를 가르치고 훈련시켜서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면 될 것을 굳이 성자 예수님의 피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이렇게 오늘날 세상 교회의 신학과 교리들은 대부분 인본에 기반한 구원론 중심의 신학이다 보니 구원의 서정 같은 반 복음적인 교리만 생산한 것입니다. 그것들은 다 십자가 복음의 대척점에서 자기 구원 자기 교회 하기 위한 종교인들의 노림수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천년 교회사는 언제나 십자가냐 교회냐의 싸움이었습니다.